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2023. 7. 30. 15:30ㆍ유명한 장소들
- 한자: 楊花津外國人宣敎師墓園
-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진길 46
- 면적: 13,224㎡
- 최초 조성일은 1890년 7월 8일이며 최근은 21세기 초
- 양화진(楊花津)이라는 뜻은 양천의 양화리는 버드나무가 우거져 버들꽃이 필 무렵 장관이고 양천 양화리의 선유봉 아래 있는 백사장에 있던 나루터이다.
- 양화답설(楊花踏雪)’이라고 일컫던 곳으로 조선시대에 중국사신이 오면 이곳에서 뱃놀이를 즐겼고, 사대부들의 별장이나 정자도 강변에 많이 세워져 있었다.
- 이미 세종 때에 태종의 제7 왕자인 온녕군이 잠두봉 일대에 정자를 지어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 양화진, 버들꽃나루, 한강을 중심 무대로 삼은 조선왕조에서 교통과 국방의 요충지이며 깊은 강물에는 대규모 선박들이 하역할 수 있어서 제물포로 들어오는 전국 각지의 생산물이 양화진을 통해 도성과 궁궐로 배분했었다.
- 천혜의 입지조건으로 인해 양화진은 한성을 넘보는 외적들이 쉽게 들이닥칠 수 있는 국방의 취약지이기도 했다.
-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양화진의 전략적 중대성은 더욱 부각되어 영조 30년에(1754) 군사적 주둔지로서 군진(軍陣)의 설치
- 병인양요와 다른 이유로 한강을 사교(邪敎)들의 피로 씻는다고 하면서 양화진 앞 강물을 천주교도들의 피로 물들였다.
- 갑신정변(1884)에 실패하고 일본으로 망명했던 개화파의 거두 고우(古愚) 김옥균(金玉均, 1851 ~ 1894) 이 1894년 조선 왕실에 의해 능지처참되어 효시당한 곳이다.
- 광혜원(廣惠院)의 원장이 된 존 윌리엄 헤론(John W.Heron, 1856 ~ 1890)은 전염병에 걸린 환자들을 돌보던 중 자신도 이질에 걸려 1890년 7월 26일, 40 세로, 삶을 마감하면서 영국과의 수호통상조약 계기로 양화진 선교사 묘원이 만들어진 계기가 된다.
- 구미권 출신 인사의 묘만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소다 가이치(曾田嘉伊智, 1867~1962)라는 일본인도 안장되어 있고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의 토지의 원 소유자이자 기증자이자 개신교인 묘지기 최봉인(? ~?) 두 명이다.
- 한국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협의회에서는 이러한 양화진의 참된 정신을 계승하고 보존하기 위해서 100주년 기념교회를 설립
- 한민족의 지난했던 근대사를 반추해 볼 수 있는 사색의 공간이자 한국 기독교의 성지로서 또한 민족사의 기념비적인 장소이다.
- 절두산성지(천주교)와 양화진묘역(개신교)을 한데 묶어 양화진성지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포구에서는 이걸 함께 묶어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범기독교 연합 사업 비슷한 것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두 종파 간 의견 차이로 무산됐다.
- 무료 방문은 가능하지만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묘지이자 종교적인 성지임을 감안, 복장과 행동에 신중을 기할 것을 권한다.
- 코스는 실내 영상물 시청 → 묘소 참배 → 양화진홀 관람이며, 전체적으로 1시간~1시간 30분 정도 소요
자세한 내용의 사이트
아래쪽 블로그는 해당 유적지를 방문한 여행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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