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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의 아돌프 히틀러는 과연 사망하였나?

푸른 하늘에 아래에 있는 낡은 지식 창고 2006. 5. 13. 17:36

 

 
출처 : http://www.ddangi.com/1-175.html


(사진설명: 연합군들에게 히틀러가 화장되었다는 장소를 보여주는 소련군장교)

과연 제 2차 세계대전을 도발하고 독일을 약 50년간 분단시킨 장본인 히틀러는 1945년 지하 벙커에서 자살을 한것일까요?

연합군보다 먼저 베르린으로 도착하였던 소련군은 히틀러의 지하 벙커를 찾는 과정에서 디코이로 통하는 2명의 가짜 히틀러 시신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디코이(Decoy)란, 독일의 패망후 연합군의 히틀러행적수사를 어렵게 하려고 히틀러와 똑같이 생긴 사람들을 모아 히틀러 행새를 하게 만드는 작업을 뜻하며 실제로 얼마전 전세계의 언론에 공개되었던 히틀러의 시신 사진들은 모두 디코이였습니다.



(사진설명: 히틀러가 자살을 하였다는 벙커를 검증하고있는 미군)

1945년 자신의 비서와 결혼을 한뒤 청산가리를 먹고 자신의 애견을 총으로 쏴 죽인뒤, 부인과 함께 동반
권총자살하였다는 히틀러는 그 직후 친위대에 의해 화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현재 공개된 자료에 의하면, 히틀러는 제 2차세계대전이 끝날무렵 소련으로 납치가된뒤 소련에 거주를 하고있었을 확률이 높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소련은 2차세계대전이후 독일의 초특급비밀 프로젝트에 참가하였던 과학자들을 자국으로 데려간뒤 신무기(핵폭탄)개발과 우주항공에 이용을 하였고, 후에 미국에 버금가는 강대국이 됩니다.

또한 소련은 1945년이후 1953년대 초반까지 공식적 으로 무려 3백만명의 유태인들을 이유없이 학살 했습니다.

유태인의 학살작업은 스탈린이 사망을 하면서 곧장 끝나게 되었다고 하나, 후에 소련이 공개한 문서에 따르면 소련은 무려 2000만명에 달하는 유태인들을 학살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사진설명: 머리에 총을쏴 자살한 히틀러가 입고있었다는 옷 - 디코이 작업의 증거물)

히틀러의 죽음에 관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은 1945년 당시 마지막으로 영사기에 찍진 히틀러가 베르린이 아닌 누렘버그에서 젊은 히틀러 친위대의 배웅을 받으며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날아가는 모습이 있다는 주장을 하여, 실제로 히틀러가 1945년 독일함락당시 베르린에 없었다는 사실을 뒷바침 했습니다.

2차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들어갈무렵 국민들에 의해 사지가 찟겨진뒤 총살을 당한 이태리의 독재자 무솔리니의 마지막 모습을 본 히틀러는, 자신도 언젠가 똑같은 모습이 될것이라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디코이 작업을 준비하고, 소련계 연합군과 비밀스런 협정을 맺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현재까지 구소련에 의해 5번이상 바뀐 히틀러의 최후 보고서는, 1999년 12월 '자살한 히틀러의 시신은 곧장 소련군에 발견된뒤 소련으로 옮겨졌고, 그의 시신은 미라형태로 보관이 되어오다 1971년 화장이 되었다'는 마지막 보고서를 작성하여 세계를 경악케
하였습니다.

이는 약 50년간 '히틀러는 벙커에서 자살을 하였고, 그의 시신은 곧장 태워졌다'라고 공식발표한 당시의 증언을 뒤집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연 구소련은 왜 히틀러의 죽음에 관한 사실을 50년이 넘도록 은폐하려 한것일까요?

이 사실을 조사한 히틀러전문가들은 '히틀러가 비밀 협정을 통해 소련으로 이송된뒤 1971년에 병으로 사망을 하였기때문'이라고 합니다.



(사진설명: 1934년 히틀러를 영웅으로 받들기위해 누렘버그에 모인 독일군인들)

그렇다면 스탈린과 함께 소련을 한때 세계최강국으로 만든 장본인은 히틀러였을까요?

그리고 세계대전후 냉전시대가 시작되며 강대국 간의 마찰이 생긴것은, 자신의 적이었던 옛 연합군 들을 서로 싸우도록 유도한 히틀러의 계략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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