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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흑사병에 대한 종교적 반응과 세속적 반응

푸른 하늘에 아래에 있는 낡은 지식 창고 2006. 9. 2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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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흑사병에 대한 종교적 반응과 세속적 반응
     
그러나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과 같은 혼란과 불안은 상당 부분 14세기에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黑死病)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사건은 서구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더 나아가 이 사건은 서구 역사의 중요한 충격적 순간이었다. 1347년에 시작된 이 흑사병은 1349년까지 유럽 인구의 1/3 정도를 희생시켰다. 플로렌스에서는 인구의 거의 절반이 석 달 동안에 모두 죽고 말았다. 14세기 후반을 통해 유럽 전체의 인구는 감소되었다. 런던에서 마지막으로 흑사병이 유행한 것은 1665년이었다.
        
이 흑사병에 대하여, 그리고 14-15세기의 사회적 혼란에 대하여, 두 가지의 반응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이처럼 비극적인 세계로부터의 종교적 구원을 추구하는 반응이었고, 다른 하나는 육체적 고통을 피하고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도록 이 세계를 더욱 통제하려는 노력이었다.
이러한 두 가지 경향으로부터 오늘날의 두 가지 중요한 문화적 공동체가 대두하게 되었는데,
하나는 종교적 신앙 공동체이며, 또 다른 하나는 새로운 과학적 지식과 자연 세계를 약탈하는 산업력을 갖춘 세속적 공동체였다.

        (1) 흑사병에 대한 종교적 반응
        
당시의 사람들은 병균(病菌)이라는 것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흑사병을 설명할 때 이것이 단지 악한 세계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라고 이해하거나, 아니면 종종 교회의 정통적 가르침을 벗어나 도덕적 혹은 영적인 질서 속에서 그 대답을 찾고자 하였던 것이다.
신앙 공동체의 다양한 종파들은 영적 세계의 초자연적 힘에 호소하여 비교(秘敎) 전통을 갱신할 것을 주장하였는데, 그 비교 전통이란 때로는 기독교 이전부터 전해진 신앙과 종교 제의들로서 기독교가 전래된 이후 무시되었던 것들이었다. 심지어 전통적 기독교 안에서도 신앙 체험이 강화되었는데, 이것은 당시 인류 사회를 위협하는 것으로 보이는 현상 세계 속에 초자연적 힘이 활발히 개입하게 되도록 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이와 함께 인간의 타락에 관한 생각이 더욱 증가되었으며, 보다 높은 거룩한 세계로부터의 영향력(은총)이 쏟아지기를 간절히 열망하게 되었다. 신앙이 종교적 체험을 주도하였으며, 구원의 신비가 기독교적 체험의 주종을 이루게 되었다. 
 
이처럼 구원(救援)에 대하여 지나칠 정도로 강조하고, 자연 세계의 계시적 중요성을 무시하는 경향 기독교의 발전에 있어서 처음부터 나타난 하나의 가능성이었다. 교리 자체도 구원에 쏠려 있어 그 균형을 잃었으며, 기독교의 이야기의 통전성이 영향을 받게 되었다. 창조(創造)는 점차 덜 중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처럼 구원의 영성에 대한 강조는 16세기의 종교적 분쟁 기간동안 계속되었으며, 그 후 17세기의 청교도주의와 얀센주의(Jansenism)에서도 계속되었다. 이러한 태도는 18세기와 19세기의 계몽주의와 혁명의 충격에 의하여 더욱 강화되었다.
        
고대 기독교 이야기의 현대판은 그 제도적 효율성과 도덕적 유효성으로 인하여 그 기능을 잘 발휘하여 왔지만, 그 이야기는 더 이상 지구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인류 사회의 통전적 이야기도 아니다. 그것은 단지 종파의 이야기일 따름이다. 그 이야기의 핵심에는 구세주의 인격, 신자들의 내면적 영적 생활, 구원의 공동체에 대한 열렬한 집착이 있다. 난처한 것은 우리가 이 상황을 정상적이며 심지어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점이다.

        (2) 흑사병에 대한 세속적․과학적 반응
        
흑사병에 대한 또 하나의 반응은 결국 오늘날의 과학적이며 세속적인 공동체를 낳게 한 반응이었다. 이것은 이 땅의 공포를 초자연적이거나 종교적 힘에 의해 치유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구의 과정을 이해하고 통제함으로써 치유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작업을 수행하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비의적(秘義的)인 지혜 전통과 플라톤의 이상주의에 몰두하기도 하였지만, 그들은 결국 이 현상 세계에 대한 경험적 조사와 양적(量的) 분석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사람들은 점차 과학적 탐구에 몰두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서구 문화의 무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어떤 힘에 의해 떠밀리게 된 것이다. 망원경과 현미경이 발명되었고, 현대 과학의 최고의 수단인 계산법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되어 과학적 사제가 서구 사상을 다스리게 되었다. 사람들은 지구를 물리적 실재로 보고,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에 관하여 새로운 이론들을 내놓게 되었다. 천체(天體)에 대하여 보다 자세하게 탐색하게 되었고, 빛의 현상을 검토하였으며, 에너지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생겨나게 되었다. 새로운 과학이 대두된 것이다.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새로운 원리󰡕(Novum Organum)는 1620년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의 󰡔원리󰡕(Principia)는 1687년에, 비코(Giambattista Vico)의 󰡔새로운 과학󰡕(Scienza Nuova)은 1725년에 각각 출판되었다.
       
 이러한 것들로 인하여 인간의 정신이 진보하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들은 18세기의 계몽주의로 이어졌으며, 인간 정신의 절대적 진보라는 생각으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것은 콘도르세(Condorcet)가 1793년에 출판한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연구󰡕(Historical Survey of the Progress of the Human Mind)에 잘 나타나 있다. 19세기에는 사회적 발전에 관한 교리들이 포리에르(Fourier), 생 시몽(Saint- Simon), 오구스트 콩트(August Comte) 등에 의하여 전개되었다. 이러한 진보 사상을 가장 현실적으로 표현한 것은 칼 마르크스(Karl Marx)가 1848년에 발간한 󰡔공산당 선언󰡕(Manifesto)이었다.
        
이처럼 인간의 인식과 사회 구조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지질학과 고생물학 영역에서는 지구의 형성과 모든 생명체들의 형성에 있어서 시대적 순서가 있었다는 증거들이 나타났다. 지구는 예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영원하고 고정적이며 변치 않는 실재가 아니었다. 또한 초기의 생명체들은 후기의 생명체들보다 단순하며, 후기의 생명체들은 초기의 생명체들로부터 유래된 것이라는 사실이 서구인들의 의식 속에 갑자기 떠오르게 되었다. 생명체들의 다양한 형태들이 태초부터 생명체 외부의 어떤 신적인 힘에 의하여 그런 모양으로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지구의 모든 부분들, 특히 모든 생명체들은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 중에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다윈(Darwin)은 󰡔종의 기원󰡕(Origin of Species, 1859)에서 바로 이러한 생명의 순서, 또한 그 생명체들이 어떻게 나타나게 되었는가에 관하여 설명하고 있다. 다윈 이후에 물리학자들은 빛과 광선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원자의 세계와 천체 구조에 관하여 거의 동시에 이해하게 되었다. 즉 현상 세계의 미시적(微視的) 차원과 거시적(巨視的) 차원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되었으며, 이 우주의 거대한 통일성이 그 공간적 확장에 있어서나 그 시간 순서에 있어서나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출처 : 개벽실제상황 동영상 총집합: 011-765-0271
글쓴이 : 세상돌아가는비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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